해파랑길 5차 염포삼거리~방어진~일산해변
해파랑길 5차 5월 21일
해파랑길은 울산 구간에 들어서며 울산 공업단지로 들어 찬 바다와 해안은 걸을 수 없고
임시로 낸 회야강과 태화강을 잇는 시내구간 이라 2구간을 생략하고
염포 삼거리에서 방어진항~대왕암을 거쳐 일산 해변으로 이어지는 8구간을 5차로 한다
기준 7구간중 태화강변 십리대숲을 잠시 걸어본다
위 사진은 작년 여름에 답사한 사진이다
당시 전 박근혜대통령이 휴가차 잠시 다녀간 뒤에 기념사진을 세워 두었었다
탄핵으로 물러 난 뒤 사진은 치워졌다
싱싱한 대숲 죽순은 새로운 대나무로 자란다
강변길을 따라 태화루까지 40여분 걷기
버스로 구간 들머리 염포산 입구에서 10시 30분 금일 구간 시작
울산 시민들의 휴식처 염포산이다
숨 막히는 도시의 공장들 사이에 푸른숲을 두른 염포산
울산의 허파와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염포동은 태화강 하류와 바다가 맞닿는 포구
1426년 조선 세종 8년 삼포 개항지의 하나로, 1780년 정조 4년에는 동면 염포리였다
. 1894년 고종 31년에 염포동, 신전동이라 불리었다.
넓은 임도 숲 그늘이 더위를 식혀준다
울산대교 전망대
높이 : 63m(해발 203m)
울산대교 전망대는 2015년 5월 개통한 국내 최장이자 세계에서 3번째로 긴 단경간
현수교인 울산대교와 울산의 3대 산업인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산업단지 및
울산 7대 명산을 조망할 수 있다.
도로로 내려서니 해파랑길 안내판이 방어진 으로 안내한다
방어진
조선시대에는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 관할의 동면(東面)에 속해 있었다.
세종 때 삼포(三浦)가 개항되면서 이곳 염포(鹽浦)에 왜인(倭人)이 드나들게 되었다.
삼포왜란 후 염포의 왜인들이 물러났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왜인들이 이곳을 군사기지로 삼았다.
조선시대에는 부근 일대가 국가 경영의 목장으로 이용되었고, 천내봉수(川內烽燧)는
남쪽의 가리산(加里山)과 북쪽의 남목천봉수(南木川烽燧)를 이어주면서 동해안을 따라 올라갔다.
울산에 경상좌도병마절제사영(慶尙左道兵馬節制使營)이 있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중요시되던 곳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상화잠동ㆍ하화잠동을 합치어 방어리라 하였다.
1931년방어진면, 1936년방어진읍으로 승격되었다. 1962년 울산시가 생기면서 방어진출장소가 설치되어
이에 속하게 되었다. 출장소는 1988년동구(東區)로 승격하여 방어동이 되었다.
방어진의 지명 유래는 이곳에서 방어(魴魚)가 많이 잡힌다는 데서 생겼으며,
광복 전에는 일본인들에 의하여 어항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1917년 방어진등대가 설치되었고, 천연적인 양항인 방어진항에는 방파제가 축조되었다.
방어진항은 울산만의 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으며, 현재는 울산 시민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방어진 맛집 섬뜰에서 단체 점심
점심후 슬도로 길을 이어간다
슬도
방어진 항으로 들어오는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바위섬으로
'갯바람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하여 슬도(瑟島)라 불린다.
슬도는 '바다에서 보면 모양이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 하여 시루섬 또는 섬 전체가
왕곰보 돌로 덮여 있어 곰보섬이라고도 한다.
슬도에 울려 퍼지는 파도소리를 일컫는 슬도명파(瑟島鳴波)는 방어진 12경중의 하나다.
1950년대 말에 세워진 무인등대가 홀로 슬도를 지키고 있으며 이곳에는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고 있어 낚시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따가운 5월의 햇살이지만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 쉼없이 부는 바닷바람을 즐기며
슬도의 풍광을 담고 해안산책로를 따라서 대왕암으로
대왕암 원경
많은 탐방객들로 붐비는 대왕암 공원
신라시대 문무대왕비가 죽어서 문무왕처럼 동해의 호국룡이 되어 이 바다에 잠겼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공원에서 슬도까지 이어진 해안산책로는 동해의 푸른 바다와 기암괴석,
100년이 넘은 해송이 어우러진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오늘의 목적지 일산 해수욕장
일산 해변 1630분 후미 도착
5시간여의 5차 해파랑길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