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17차
해파랑길 17차 기본 코스는 강구항~고불봉~영덕 풍력단지~해맞이공원 약 19k
거리도 멀고 특색없는 산길로 되어 있어 해파랑길의 기번 취지대로 해안길로 진행 한다
5월은 3주차 일본 여행으로 2주차 13일 0940분경 해맞이 공원에서 걷기 시작
비오고 난 뒤 깨끗한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5월의 푸르름을 더한다
오포해변을 지나고
오포리(烏浦里)
오포리 동명의 유래는 이 마을 뒷산이 오두(烏頭 : 까마귀 머리) 형국인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고려시대 때 인동장씨(仁同張氏)가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중남면 지역으로써 오개 또는 오포라 하였는데 1914년 3월 1일 부령(府令) 제111호에 의해
전국의 행정구역을 폐합할 때, 신강구를 병합 영덕면에 편입되었다가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됨에 따라
강구면에 속했으며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오포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행정동으로는 오포1, 2, 3리로 분동되어 있다.
강구항으로 이어지는 데크길
강구항
오십천을 가로지르는 강구교
대게의 고장답게 크다란 조형물이 나그네들을 반긴다
오십천
길이는 40㎞이고, 유역면적은 380㎢이다. 영덕군 지품면과 청송군과의 경계에 있는 대둔산(大遯山, 905m)과
벅구등(846m) 등지에서 흘러내려 오다가 대궐령(大闕嶺)에서 흘러온 소서천(小西川)과 포항에서 북류하는
대서천(大西川)을 합하고 대소의 소(淵)를 거쳐 함벽경대(涵碧鏡臺)ㆍ영덕수원지(盈德水源池)ㆍ
호호대(浩浩臺)를 지나 다시 직천(直川)을 합하여 강구항에서 동해에 이른다.
영덕에서 지품(知品)까지 오십도(五十渡: 쉰나들)라 하여 쉰내물[五十川]이라 부른다고 한다.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무대가 된 뒤로 더 유명해진 강구항
강구항은 영덕읍내에서 약 7km 정도 남쪽에 있는 영덕 최대의 항구이다.
청송의 주왕산 자락에서 시작해 구비구비 흘러내려온 오십천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도 바로 이 강구항이다.
이런 지리적인 특성으로 강구항은 바다의 항구이면서도 오십천의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오십천을 건너는 강구대교의 양쪽으로 접안시설이 만들어져 다른 항구와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특성으로 이 강구항은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지로 많이 이용되었다.
대표적인 드라마가 ‘그대 그리고 나’. 최불암, 차인표, 최진실, 박상원 등 인기 배우들이 출연했던 이 드라마의
배경이 바로 이 강구항이었다.
이 강구항과 오십천 하구 남쪽의 오포해수욕장에서 많은 촬영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또 강구항은 유명한 영덕대개의 집산지로 유명하다. 이제는 예전처럼 많이 잡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영덕대개는
미식가들의 입맛을 당기는 음식이다. 강구항 주변에는 영덕대개를 파는 집이 많은데, 영덕대개 요리를 그래도
좀 싸게 먹을 수 있는 곳은 강구대교 부근의 풍물거리이다.
강구리 리명(里名)의 유래는 오십천 강 어구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마을을 개척한 이는 지금부터 약 4백년전 안씨(安氏)와 이씨(李氏)라는 두 어부가 태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이곳에 대피,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盈德縣) 중남면(中南面) 지역이었으나 갑오경장(甲午更張) 뒤인
1895년(高宗 32년) 5월 26일 칙령(勅令) 제98호로 현을 군(郡)으로 개칭할 때 영덕군에 속했으며
새마을이 생김에 따라 신강(新江)과 구강(舊江)으로 나누어 불렀으며 1914년 3월 1일 일제(日帝)는
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해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폐합 할 때 강구동으로 하여 영덕면(盈德面)에 속했으며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됨과 동시에 강구면에 속했으며 그뒤 1988년 5월 1일 군조례(郡條例)
제972호로 동(洞)을 리(里)로 개칭할 때, 강구동은 강구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행정구역상 1, 2, 3, 4리로 분동되어 있다.
강구 1리는 일제하인 1917년 축항공사로 어선정박이 늘어나 어업전진기지로 변하자 갈대밭을 매립하여
마을이 형성된 곳으로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였다.
강구 2리는 일제시대에 변전소가 설치되면서 형성되어 전기회사 마을이라고도 하였다.
갈대밭을 매립한 시가지 평지에는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하고, 산비탈에는 한인들이 주로 살았는데,
이곳을 골마을이라고 불렀다. 강구 3리는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에 의하여 평지가 잠식되자 한인들이 이곳을
개척하기 시작하였는데, 이웃한 골마을과 더불어 대추나무가 많다고 하여 대추밭골이라 불렀다.
강구 4리는 강구항이 어업항으로 번창하자 새로 생긴 마을로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기동이라고도 하였다.
해안이 매립되어 공원이 조성되었다
해안 영덕대게로를 따라서 걷는다
각시붓꽃
금진리(金津里)
금진리 리명(里各)의 유래는 나루 뒷산에서 구리쇠가 많이 났으므로 쇠날기라 하다가 변하여
쇠나리 또는 금진이라 하였다.
이 마을은 지금부터 약 4백년 전인 16세기 후반에 김해허씨(金海許氏)와 밀양박씨(密陽朴氏)가
마을을 개척했다 하며, 소하(小下) 마을은 약 3백년전 김해김씨(金海金氏)가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동면(東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3월 1일 일제(日帝)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소하동을 병합,
금진동이라 하여 오보면(烏保面)에 편입되었다가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됨에 따라 강구면에 속했으며
그 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금진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행정동으로는 금진1, 2리로 분동되어 있다.
하저리(下渚里)
하저리 동명의 유래는 바닷가 백사장에 위치한 마을인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지금부터 약 6백여년전 순흥안씨(順興安氏)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하고 임리(林里)라고 하다가
그 뒤 기계유씨(杞溪兪氏)와 밀양박씨(密陽朴氏)가 차례로 정착하여 하저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동면(東面) 지역으로써 동해 바닷가의 전형적인 해안 마을로 1914년 3월 1일 총독부령
제111호로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폐합 할 때 임리(林里)를 병합하여 하저동이라 하고 오보면(烏保面)에 속했다가
1934년 강구면이 신설됨에 따라 강구면에 속했으며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할 때 하저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바닷가 작은 텃밭의 청보리
강대박 대게집
이름처럼 대박나시길
영덕읍으로 들어서고
대부리(大夫里)
대부리 동명의 유래는 16세기경 안씨(安氏)가 터를 잡았으며 그 뒤 송씨(宋氏)가 들어와서 제당(祭堂)을 짓고
동명을 태고진(太古津)이라 했으며 김씨(金氏)가 들어와 태부(太夫)로 개명하였다가 다시
대부(大夫)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에 속했으며 대한제국 때에는 영덕군 동면(東面)지역으로 태부(太夫)라 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일제(日帝)는 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해 전국의 행정구역을 자의로 통폐합 할 때 태부동으로
하여 오보면(烏保面)에 소속시켰다가 193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대부동(大夫洞)으로 하여 영덕면에 편입시켰으며, 그 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에 의하여 영덕면이 읍으로 승격되자 영덕읍에 소속되었으며,
1988년 5월 1일 군조례 제972호로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대부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횟집 마당의 꽃
맛나는 물회를 먹고
대부포구
창포리(菖浦里)
창포리 동명의 유래는 이 마을은 붓꽃이 많이 피는 갯가가 되므로 「붓개」 또는 창포라 하였다.
이 마을은 통일신라시기인 7세기경에 임씨(林氏)가 개척했다 하며, 그 뒤 조선 후기 인조(仁祖) 연간인
17세기경 임경업(林慶業) 장군의 후예가 이 마을에 정착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에 속했으며 대한제국 때에는 영덕군 동면지역이었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창포동이라 하여 오보면(烏保面)에 속했다가 1934년 4월 1일 영덕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뒤
1979년 5월 1일 영덕면이 읍으로 승격되자 영덕읍에 속했으며 1988년 5월 1일 동(洞)을 리(里)로 개칭할 때
창포리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멋진 대게 조형물
창포말 등대
2007년 영덕의 랜드마크인 대게를 형상화하여 만들어졌다
해맞이 공원
전국 제일의 청정해역과 울창한 해송림으로 둘러쌓여 있던 창포리 동해안 일대가 1997년 2월 대형 산불로
페허가 되어 방치되다 4년간의 노력으로 수려한 해안절경과 무인등대를 활용한 인공공원을 조성하였다.
산불피해목으로 침목계단을 만들어 산책로를 조성하였으며, 사진촬영과 시원한 조망을 위한 전망데크와
휴식공간을 위해 파고라를 만들었고, 어류조각품 18종을 실시간 방송되는 음악과 어우러지도록 조성하였으며,
야생화와 향토수종으로 자연학습장을 조성하였는데, 수선화·해국·벌개미취 등 야생화 15종 30만본을 식재하였고,
해당화·동백·모감주나무 등 향토수종 8종 7만 본을 식재하였다.
2시경 해맞이 공원 도착 17차 종료
삼사공원~해맞이 공원 약 12k 4시간
멀리 축산등대
영덕 풍력단지 탐방
멀리 보이는 낙동정맥
종주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