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일 저녁 부산국제여객터미날 여객선에서
밤새 파도 심한 현해탄을 건너서 시모노세끼항에 도착
긴 출국심사를 마치고 올레구간 시작점 옆에 있는 일본 최장 인도
꿈의 현수교를 먼저 탐방한다
티켓을 발매 하는 가이드
다리 둘러보고 주차장 부근에서 도시락 점심
11시 40분경 올레시작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은둔하며 집필하였다는 우케노구치 온천
삼나무숲 산길을 오른다
일본의 봄은 삼나무꽃 알레르기로 온 국민이 몸살을 앓는다 한다
피톤치드가 많고 여러가지로 유용한 너무이지만 꼭 좋치만은 않은 것 같다
하늘은 푸르고 들녁은 초록이다
모내기 끝난 논길옆을 걷는다
뒤로 보이는 산은 구중산
갈림길에는 안내 표지판
작은 호수와 찻집이 있는 자연관
이지역은 광활한 구중산고원 초원지역으로 목장이 유명하단다
점점 가까워 지는 구중산
그야말로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하늘이며 꽃구름이 환상적이다
목장에는 가족단위의 탐방객들이 많이 보인다
목장표 아이스크림 요구르트를 먹으며 휴식
다시 길을 간다
구중산 자락에 연기가 하얗게 피어오른다 이지역은 화산지역으로
땅만 파면 온천수가 솟아오른다 한다
한없이 걸어도 좋을것 같은 초원길
작은 언덕을 넘어가니
아소구주 국립공원
3시 반 올레 종착지 도착
파란과 초록을 가득 담았던 올레트레킹을 마친다
40분 정도 아동하여 도착한 구주고원호텔
산 중턱에 자리한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는 호텔이다
일본가정식 정찬으로 저녁
다음날 시모노세끼로 이동하며 관광
처음 도착한 유후인 긴린코 호수
유후인은 일본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온천지 전국 3위 내에 매년 선정되고 있으며,
규슈의 온천지 중에는 단연 최고의 인기를 자랑한다.
기존 패키지 여행, 회사의 단체 연수 등에 이용되던 다른 온천지의 대규모의 료칸들과는 다르게
유후인의 료칸들은 자연과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하며 각각의 개성을 살린 객실 수 5~20개의
소규모 료칸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유후인 역에서부터 긴린 호수까지 이어지는 일명 ‘유후미도리(由布見通り, 유후인을 보는 거리)’에는
예쁘고 독특한 수공예품 상점과 시골의 정취를 살리면서도 세련된 레스토랑, 소규모 미술관, 갤러리들로
여행객에게 색다른 즐거움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이루고 있다.
매년 5월 문화 기록 영화제(ゆふいん文化 · 記録映画祭), 7월의 유후인 음악제(ゆふいん音楽祭) 등의
다양한 축제도 여행객의 발길을 사로잡는 유후인의 매력 중 하나이다.
아기자기한 유후인의 분위기를 한층 더해 주는 안개의 근원은 호수로, 온천의 원천이 흐르고 있어
호수의 온도가 높아 새벽이 되면 원천수와 호수의 온도 차이로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안개가 유후인 전체를 감싼다. 원래 이름은 언덕 아래의 호수를 의미하는 다케모토노이케(岳下の池)였는데
메이지(明治) 17년(1884년) 모리쿠소라는 유학자가 이곳의 노천탕 ‘시탄유’에서 온천을 하다가 호수에서
뛰어오른 물고기의 비늘이 석양에 비쳐 금빛으로 빛나는 것을 보고 지은 이름이 긴린코이다.
호수를 한 바퀴 둘러보는 데는 10분 정도 소요되며 아주 넓은 호수는 아니다.
일본에서 금상 받은 고르케도 먹고 벌꿀아이스크림도 먹고
다음 아오노도문 동굴로 이동
어느 스님이 신도들이 쉽게 찾아올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 성찰의 마음으로
끌과 망치로만 파서 만들었다는 동굴
인간의 집념과 신념이 얼마나 강하고 위대한지 보여주는 곳이었다
日나카츠 야바케이 라칸지절의 젠카이승려
“이 공덕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 우리 모두 함께 성불하기를 기원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만령께 맹세합니다.
이 길을 연 사람은 수행자인 조동종(曺洞宗) 승려 젠카이입니다.---중략 1750년 8월”
250여년 전 한 승려가 오로지 정과 망치만으로 나가츠시 야바케이(耶馬溪)의
라칸지(羅漢寺) 초입 아오노도문을 뚫은 숭고한 고행에 세인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1735년에 발심한 라칸지의 젠카이승려는 대공정에 앞서 신도들의 불공에 따른
위험스런 절벽을 관통하는 바위 굴을 뚫기에 고심하게 된다.
탁발을 하면서 홀로 굴을 뚫는 그의 모습을 바라본 마을사람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라는 손가락 질에 그를 더 힘들게 했다.
지금과 같은 연장이나 장비가 없었던 터라, 젠카이승려는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묵묵하게 손으로만 돌을 깨고 날을 더해간다.
그가 정과 망치만으로 바위 굴을 뚫기 시작한지 어언 16년째, 그의 집념은 급기야
두눈시린 결실을 맺게 된다
그때 젠카이 승려는 63세로 이미 노승 단계로 접어든다.
이에 멈추지 않은 젠카이승려는 관할하는 나카츠현(현 中津市)에 신청해 터널의
통행료를 받을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아 일본 최초 통행료의 효시가 된 셈이다.
사람은 1인당 4문(당시 화폐 단위),소와 말은 마리당 8문을 받아 쌓인 자금으로
비좁은 석굴을 넓힐공사재개와 석수장 품삯, 시주, 도와준 일꾼의 사례금 등으로
사용했다.
마침내 착공한지 30년만에 동굴 터널은 완성되고 전체 길이만도 350m나 되며,
터널은 총 5군데의 150m 가량이 됐다.
강위에 세워진 일본 유일의 8연속 아치돌다리 야버케이다리
야바카댐 아래 수석정원
아카마 신궁
1185년 안토쿠왕이 바다에 뛰어내려 자살한 그 해에 건립된 아카마 신궁(赤間神宮)은
안토쿠왕과 단노우라 해전에서 죽은 헤이케 사람들의 묘지가 있다.
바다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 안토쿠 왕의 시신은 며칠 후에 그물에 걸려 인양되었다고 한다.
아카마 신궁은 안토쿠 왕을 제신으로 모시는 신사인데 조선의 통신사가 오갈 때 머무르는
숙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신사를 따로 신궁이라 부르는 곳은 황족을 모시거나 특별한 경우인데
신궁이나 신사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조선 통신사 상륙기념비와 시모노세끼항
이렇게 관광을 마치고 부관페리 성희호로 다시 현해탄 건너
22일 아침 부산 도착
규슈올레 여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