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28차
4월 21일 06시 40분 추암버스주차장에서 시작한다
표시기와 안내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데
안내표시기를 단 사람이 누구인지 너무도 친절하게 십미터 간격으로 걸어 놓았다
해파랑길 내내 정작 갈림길이나 애매한 곳에는 없던것이
관리 주체는 해파랑길 전 구역을 확인하고 관리해야 할 것이다
새벽 일터에서 체조로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
군초소옆으로 길은 이어지고
전천 하류
멀리 두타산 청옥산이 펼쳐져 있다
백두대간 종주시 댓재에서 두타산 넘어 백봉령까지 30k
10시간의 종주구간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단풍에 취해 걸었던 길이 아련하다
전천은
두타산에서 발원하여 무릉계곡을 이루고 이곳에서 바다로 흘러간다
전천을 건너고
이제부터는 동해시이다
1980년 삼척군 북평읍과 명주군 묵호읍이 분리된지 972년만에 통합되어 동해시가 되었다.
동해역에서 잠시 휴식
삼척선, 묵호항선, 북평선이 갈라져 나간다. 모든 여객 열차가 정차하며,
동해시가 생기기 전에는 북평역(北坪驛)이라는 이름으로 영업하였다.
역무실에서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를 날인할 수 있으며 한때
또한, 바다열차가 평일 기준 1일 4회 정차하고 주말에는 1일 6회 정차하고 있다.
역 구내의 산업선전철준공기념비는 한국철도공사 선정 철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북평
북평은 전천강을 중심으로 넓은 평야로 형성되어 있다 하여 後坪(후평) 또는 "뒷뜰"이라 하였다.
그 후 北坪이라 했는데, 시승격시 북평, 구미, 구호, 추암 등이 합하여 북평동으로 되었다.
◆송정 (松亭)
송정은 원래 "송생처(松生處; 솔난곳)"라 하였다가 그후 "송라정", "송호"라 불렀는데
이 3개 명칭을 합하여 "송정"이라 하였다고 한다.
시 승격시 송정, 용정 1,2리를 합쳐 "송정동" 이라 하였다.
용정부락을 중심으로 동쪽해안에 "용추"가있고 북쪽에 "제구"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용이 승천하였고 안산 "구미산봉(九美山峰)"에서 용마가 태어났다고 하여
이 부락을 "용장" 또는 龍亭이라 하였다가 후에 龍井이라 하였다.
군부대 벽을 따라가서
도로 굴다리를 건너고
해군마크를 보니 이곳에서 근무 하던 때의 기억이 새롭다
잘 정비된 길을 따라간다
감추사를 지나서 데크길로 진행
주차차량 등으로 놓치면 묵호까지 도로를 따라 가야한다
한섬해변길로
조용하고 아름다운 한섬해변
해안 송림길
고불개 해변 너머 묵호항이 보인다
군부대 해안 철책선
해파랑길은 해안길이라 여러지역에 해안부대가 있는 데
개방된 곳도 있고 아직 갈 수 없는 곳도 많다
지자체와 군부대 해파랑길 관련 부처가 확인하고 협의해
가능한 곳은 열렸으면 좋겠다
오륙도 에서 여기까지 약 500k를 걸어왔고
이제 종착지 까지는 약 200k다
묵호항 풍경을 보면서 철길 옆 해안길을 걷는다
묵호로 들어서고
묵호는
이 고장은 옛날에는 "오이진"이라 했는데, 한일합방 이후 삼척일대에서 캔 연탄이
이곳 항구를 통해 실어나를 때 항구가 연탄가루 때문에 먹물처럼 검게 보인다 하여
"묵호진"이라 불렀고, 후에 시 승격시 묵호동으로 되었다
묵호어판장
논골담길로
논골담
묵호를 말할 때면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는,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고기잡이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젊은 여자, 허름한 부둣가 다방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먼바다 기상예보, 폭풍주의보로 어선의 발이 묶이자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는 사내들,
만선 깃발을 단 고깃배가 가득 싣고 돌아온 오징어의 배를 따는 아낙네들….
묵호에는 이런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논골담길’이 있다.
논골담길은 동해시문화원이 ‘묵호의 재발견’이란 취지로 묵호항에서 묵호 등대로 오르는 달동네 골목길
담벼락에다 벽화를 그려 넣어 조성한 길이다.
그 길에는 머리 위로 전선이 어지럽게 지나가고, 처마와 처마가 잇닿은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진다.
1941년 묵호항이 개항하자 일자리를 찾던 사람들은 무연탄과 시멘트에,
더러는 고기잡이에 생계를 의탁하기 위해 묵호로 모여들었다.
묵호에서 일자리를 찾은 이들은 일터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 뒤편 묵호진동의 비탈진 언덕에다
얼기설기 판자를 덧대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 누추한 달동네를 ‘논골 마을’이라고 불렀던 건 골목마다 질척거리는 진창 때문이었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곳.
질퍽거리던 논골 마을의 골목이 지금의 ‘논골담길’이 됐다.
논골담길 벽화에는 전성기 묵호의 달동네 모습이 그려져 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었으니, 전성기라고는 해도 풍요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먹고사는 게 해결된다는 것만으로 묵호는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들이 넘쳐났다.
벽화에 그려진 전성기 무렵의 묵호 풍경은 ‘과거의 영광’이라기보다 ‘애잔한 추억’에 가깝다.
가난하고 누추했던 때의 이야기를 담은 벽화가 불러내는 건 따스했던 과거의 추억이다.
삶은 고단하고 가진 건 적었지만, 그걸 기꺼이 이웃들과 나눌 줄 알았던 때의 이야기들이
논골담 마을의 벽화 속에 있다.
논골담길과 묵호등대에서 풍경을 감상하고
수변공원에서 오늘구간 종료
추암~묵호등대 약 15k 4시간 30분
묵호시장 부근에서 생선구이 점심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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