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7일 해파랑길 18차
해파랑길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이름난 영덕 블루로드 구간
0910분 어떤 풍광으로 우리를 기다릴까 기대하며 걷기 시작
아름다운 해안곡선 멀리 축산등대까지 한 눈에 보인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푸른바다를 바라보며 한없이 기 받고 갈텐데...
대탄 포구
대탄리 동명의 유래는 동해 바닷가 큰 여울 옆이 되므로 해여울, 해월, 또는 대탄이라 하였다.
이 마을은 16세기경에 정영용(鄭英用)이란 분이 마을을 개척하고 마을 이름을 향월(香月)이라 하였는데
19세기 중기에 강씨(姜氏)라는 분이 들어와 마을에 큰 여울이 있다 하여 대탄이라 하였다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에 속했으며 대한제국 때에는 영덕군 동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3월 1일 총독부령
제111호로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폐합 할 때 대탄동이라 하여 오보면(烏保面)에 편입시켰다가
1934년 4월 1일 영덕면에 편입되어 오다가 1979년 5월 1일 영덕면이 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영덕읍에 속했으며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대탄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름 바닷가의 상징 매꽃
오보리(烏保里)
오보리 동명의 유래는 마을 입구에 있는 바위가 까마귀(烏)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올치미’라고 불렀는데,
이 말이 전해 내려오면서 오보(烏保)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마을은 15세기경 유씨(劉氏)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한다.
본래 오보부곡(烏保部曲)이 있던 곳으로써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동면지역으로 오보라 하였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보동이라 하여 오보면에 편입되었다가 1934년 4월 1일 영덕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뒤 1979년 5월 1일 영덕면이 읍으로 승격되자 영덕읍에 속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돌아 본 대탄리포구
노물리 포구
노물리와 이어지는 해안길
노물리(老勿里)
노물리 동명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노물(老勿)」이란 늙지 말라는 뜻으로써 늙지않는 즉 장수(長壽)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노물이란 이름은 1789년의 「호구총수」에도 나오며, 물(勿)자는 고구려 계통의 언어로
아마 4∼5세기 경 고구려가 남하하여 청하와 흥해를 경계로 할 때, 영덕의 지명인 야시홀이란 이름이 붙을 당시에 같이
생긴 이름으로 보인다.
이 마을은 13세기경에 안씨(安氏), 정씨(鄭氏), 박씨(朴氏) 등이 정착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에 속했으며 대한제국 때에는 영덕군 동면(東面) 지역으로 노물이라 하였는데
1914년 3월 1일 총독부령 제111호로 부·군·면(府郡面)을 폐합할 때 노내리(老內里)를 병합하여
오보면(烏保面)에 편입되어 오다가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영덕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로 영덕면이 읍으로 승격될 때 영덕읍에 소속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노물리 지나고
석리마을 가는 길에 해녀상
작은 포구에 기대어 물질만이 삶을 이어가는 고단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석리라는 이름과 걸맞게 기암들이 해변에 가득하다
야생화들도 길손을 반기고
석리마을
석 리(石里)
석리 동명의 유래는 돌이 많은 곳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17세기경인 인조(仁祖) 연간 병자호란때 순흥안씨(順興安氏)가 이곳에 피난하여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며,
그 뒤 김해김씨(金海金氏)와 김녕김씨(金寧金氏)가 정착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에 속했으며 대한제국 때에는 영덕군 동면지역 이었으나 1914년 3월 1일 일제(日帝)가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폐합 할 때, 예진동 돌면동을 병합하여 석리라 하고 오보면에 편입되었다가
1934년 4월 1일 영덕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뒤 1979년 5월 1일 영덕면이 읍으로 승격되자 영덕읍에 속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돌아 본 석리마을
해변을 지키는 군인상
지금은 동해안 해변길이 거의 개방되었지만
예전에는 침투하는 간첩들을 막기위해 의 모든 해변에 철조망을 치고
곳곳에 군인들과 경찰들이 지키고 있었다
해마다 피고 지는 노란 기린초는 그때를 알겠지
바위에 부딪는 저 파도도 기억하겠지
경정마을에 이른다
마을의 수호신 처럼 서 있는 바위
경정리 부터는 축산면에 속한다
경정리 동명의 유래는 긴 모래불이 있으므로 뱃불 또는 경정이라 하였다.
경정1리인 뱃불 마을은 15세기 중기(1449년경)인 세종(世宗) 연간에 영해박씨라는 분이 월부현(月浮峴)에 올라
지형을 살펴 본 다음 김해김씨라는 분과 함께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며, 경정 2리인 수구너미 마을은
11세기 중기(1060년경)에 영해 부사(寧海府使)가 마을을 순시하던 중 말을 타고 재를 넘으면서 이 마을의 형국을 보고
우마차(牛馬車) 길마 같이 생겼다고 하여 우차의 차(車)와 넘을 유(踰)자를 따서 차유(車踰)라 명명하였다 하며,
마을의 형성은 어느 때 누구에 의해서 되었는지 미상이다.
조선시대에는 영해부(寧海府) 남면(南面) 지역이었는데 갑오개혁(甲午改革) 뒤인 1895년(高宗 32년)
5월 26일 칙령(勅令) 제98호로 지방 관제 개정을 할 때 영해부가 영해군(寧海郡)이 되었는데,
이때 경정리는 영해군에 속했으며, 1914년 3월 1일 일제(日帝)는 부령(府令) 제111로 행정구역을 자의로 폐합할 때
오매동·차유동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경정동이라 하고 영덕군 축산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뒤 1988년 5월 1일 군조례(郡條例) 제972호로 동(洞)을 리(里)로 개칭할 때 경정동은 경정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며,
현재 행정구역상 경정 1,2,3리로 분동되어 있다.
경정리를 지나고 잠시 도로를 걷는다
이채로운 경정리 해안
차유리 대게원조마을표지석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경정2리 차유(車踰)마을은 "영덕대게"의 원조 마을이다.
때는 고려 29대 충목왕 2년(서기 1345년)에 초대 정방필 영해 부사가 부임하여 관할지역인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경정2리의 자연 부락이며 대게의 산지인 이곳 마을을 순시하였다.
그후부터 마을 이름을 영해 부사 일행이 수레를 타고 축산방면에서 고개를 넘어 왔다고 하여 한자로
수레차(車),넘을유(踰)를 써서 "차유리"라 마을 이름이 지어졌다고 전한다.
마을 앞에 동해의 우뚝한 죽도산(竹島山)이 보이는 이곳에서 잡은 게의 다리 모양이 대나무와 흡사하여
대게로 불리어 왔다고 한다
돌아본 차유마을
축산항으로 가는 솔숲길
축산등대
축산리 축산리 동명의 유래는 지형(地形)이 소가 누워 있는 형국(形局)이 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8세기 중기인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때 청주한씨(淸州韓氏)가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하나, 영양남씨(英陽南氏) 입향시조 유래로 더 유명하다.
즉, 경덕왕 14년(755년) 당(唐)나라 현종(玄宗) 연간에 김충(金忠)이란 안렴사(按廉使)가 일본 사신으로 다녀오던 도중 풍랑을 만나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이곳 축산에 표착(漂着)한 다음 신라에 살기로 청원하자 경덕왕이 남쪽에서 왔다 하여 남씨(南氏)로 사성(姓)하고 시호를 영의(英毅)라 내리고 식읍(食邑)을 영양(英陽)으로 정하였다. 이로써 남씨 시조가 되었으며, 뒤에 영양, 의령, 고성으로 분관되었다고 한다.
축산2리인 염장(鹽場) 마을은 약 2백여년전 해일(海溢)로 인하여 염수(鹽水)가 스며들어 붙여진 이름이며, 양장(羊腸)은 약 5백년전에 영해박씨(寧海朴氏)가 입주하여 양을 사육하였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며, 양장(良庄)은 약 3백년전에 김복용(金福龍)이라는 분이 현 구평들을 개척하여 좋은 농장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축산3리는 죽도산(竹島山) 밑으로 약 3백년전 오씨(吳氏)가 개척하여 추씨(鄒氏)라는 분과 함께 대나무를 심고 죽산동(竹山洞)이라 했다 하며, 일명 신기(新基) 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에는 영해부에 속했으며, 대한제국 때에는 영해군 남면(南面) 지역으로서 축산포영(丑山浦營)을 두고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있었는데, 1914년 3월 1일 일제(日帝)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양장동, 차유동 일부지역을 병합하여 축산동이라 하고 영덕군 축산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축산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며 현재 행정동으로는 축산 1,2,3리로 분동되어 있다. 1924년 3월 축산항을 개발하여 어항으로 발전되고 있으며, 축산, 축산항, 축산포, 축산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워진다.
해안 직벽바위에서 클라이밍을 즐기는 사람들
축산등대
축산항
축산항에서 가재미물회로 점심을 먹고
볼거리와 이야기거리 풍성한 구간을 마친다
'해파랑길 종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파랑길 20차 병곡휴게소~후포항 (0) | 2018.08.27 |
---|---|
해파랑길 19차 (0) | 2018.07.18 |
해파랑길 17차 (0) | 2018.06.06 |
해파랑길 16차 (0) | 2018.04.25 |
15차 오도리해변~화진휴게소 (0) | 2018.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