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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종주기

해파랑길 16차


4월 15일  해파랑길 16차

화진해변~장사해변~구계항~영덕 삼사공원 까지

0950시 화진 휴게소에서 걷기 시작한다


해변길로 내려서고



잘구며진 해변 카페


지경포구

이 마을 북쪽은 영덕군(盈德郡)과 경계를 이루는 버드내(지경천-(地境川))가 흐르며,

1리(里)에는 지경(地境), 2리(里)에는 어사터와 염전(鹽田)이란 자연부락이 있는데,

1914년 지경리(地境里)로 통폐합 되었다




지경천 다리를 건너 이제부터는 영덕구간이다

영덕구간 해파랑길은 영덕 블루로드




장사 해변

장사상륙작전 기념공원이 조성되었다

역사의 흔적을 남기고 기념하는 것은 좋은것이다

하지만 아무른 생각없이 만든 상륙함은 그대로 방치되어 흉물이 되었다

이왕이면 철저한 고증과 노력으로 제대로 만들었으면 좋치 않았을까
















장사리의 유래는 긴불 즉, 긴 백사장이 마을 앞에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긴불, 진불 또는 장사라 하였다. 
이 마을은 1470년경에 안씨(安氏)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하여 내동(內洞)이라 이름하고 정착하였다고 하며,

또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한 사람이 장사 서쪽 높은 곳을 개척하여 두천(斗川)이라 이름을 짓고

정착한 데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긴불, 뒤천(斗川), 오산(烏山), 장태, 점집 등 자연마을로 형성되어 영덕군 외남면(外南面)에

속해 있다가 1914년 3월 1일 부령(府令) 제111호에 의해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합할 때 이 마을들을 병합하여

장사동이라 하고 남정면에 편입하였으며, 그 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할 때 장사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나무들 연초록 잎새가 싱그럽다



해변길 지나 도로를 걷고


  부흥리의 유래는 자부랑(慈富 : 者夫郞)의 부(富)자와 신흥(新興)의 흥(興)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부흥1리는 17세기 초기인 선조(宣祖) 년간에 양씨(梁氏)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하였다 한다.

도천리 앞산인 봉황산 주령(主嶺) 봉황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형국(形局)이므로 날아가지 말라는 뜻으로

날미(飛勿)라 불렀다 하며, 2리는 16세기경에 정씨(鄭氏)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한 뒤 지형이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으로 봉황의 새끼는 아름답다 하여 가추(佳雛)라 불렀다 하며, 3리는 17세기경 권씨(權氏)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했다 하며 부자가 많이 생긴다고 하여 자부(慈富)라 하였는데 지금은 자부랑(者富郞)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외남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비물동, 자부랑동,

신흥동(新興洞)의 일부를 병합하여 부흥동이라 하고 영덕군 남정면에 편입하였으며 그 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부흥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척리

영덕현 외남면 소속으로 조선 인조 년간에 원씨 성을 가진 사람이 터를 잡고 마을을 개척하여 동해바다와

산언덕을 자로 재듯 조화있게 하여 원척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시 원척동으로 하여

남정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5월 동을 리로 개칭할 때 원척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계항 방파제가 보인다


구계항

  구계리의 유래는 마을 앞 바위의 모양이 마치 새우가 물에 떠 있는 형상과 같아 하부(鰕浮)라 하였는데

이것이 변하여 구배, 구계가 되었다는 설이 있고 또 마을 뒷산이 거북이 형국(形局)이고 깊은 계곡이 있어

구계라 했다고도 한다.
  이 마을은 17세기 후기인 숙종(肅宗) 연간에 김씨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盈德縣) 외남면(外南面) 지역이었는데 갑오개혁(甲午改革) 뒤 1895년(高宗 32년) 5월 26일

칙령(勅令) 제98호로 종전의 현(縣)을 군(郡)으로 개칭할 때 구계리는 영덕군에 속했으며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13도제(道制)를 실시할 때 경상도에 속했으며 1914년 3월 1일 일제(日帝)는 총독부령(總督府令)

제111호로 전국의 행정구역을 폐합할 때 구계동이라 하여 남정면에 속했으며 그 뒤 1988년 5월 1일

군조례(郡條例) 제972호로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구계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계기사식당에서

도루묵찌게로 단체 점심

오늘구간 종착지 삼사공원이 보인다

남호 해변









삼사리 해변 낚시 다리

유료 통행 제한


삼사리의 유래는 신라(新羅) 때 시랑(侍郞) 벼슬을 한 세 사람이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

하기도 하고, 혹자는 세사람의 시랑들이 이 마을에 숨어 살았다 하여 삼시랑골 또는 삼시랑이라 하였다

하기도 하며, 또는 그 뒤 이 세 분을 생각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기도 한다.
  이 마을은 8세기경(약1300년전) 안씨(安氏)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그 뒤

평산신씨(平山申氏)가 들어왔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중남면(中南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피전동(皮田洞)과

호연동(浩然洞)을 병합하여 삼사동이라 해서 영덕면에 편입되었다가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됨에 따라

 강구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삼사리 해변





영덕 삼사공원

아래로는 포항시, 위로는 울진군과 맞닿아 있는 영덕군은 영덕대게와 평민 의병장 신돌석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드라마의 무대로 강구항이 알려지면서 영덕의 관광산업은 크게 발전했다.
강구항 남쪽,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삼사 해상공원은 주위의 경치가 아름다워 주말이면

가족단위로 많이 찾는 공원이다.

경북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29t의 경북 대종과 공연장, 테마랜드와 방갈로, 해피랜드와 기타공원 내 식당,

 매점 등이 20t 규모의 천하제일 화문석과 인공폭포, 동해바다 경관과 어우러져 가족휴양지로 좋다.
이북의 고향을 그리는 마음으로 세워진 망향탑과 매년 1월 1일 전국에서 오는 분들과의 해맞이 축제시 벌이는

제야의 타종은 경북의 대표관광지로 자리잡고 있다.













14시 구간종료

화진해변~삼사공원   12k  4시간

부경온천으로 이동 온천욕으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