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일 15차
지난구간 종점 오도리에서 0940분 걷기시작
완연한 봄날씨로 걷기좋은 날씨다
오도리(烏島里)는
1914년 한가심이, 검댕이, 섬목과 같은 자연부락을 합하여 오도(烏島)라 칭하고 곡강면에 속하였다.
오도(烏島)는 원래 부둣가에서 100m 거리에 위치하여 3개의 커다랗고 질편한 검정색 바위로 되어 있는
작은 섬인데, 마을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마을이름의 유래가 된 듯한 넓직한 검은 바위들
범선 모양의 펜션이 멋지다
오도리마을을 돌아보고
이제부터는 청하면으로 들어선다
이가리해변으로
연인바위가 “선사시대 때 이 지역 부족장의 딸 해수기는 다른 부족과 오랜 전쟁에 패하여 여기 대곶이 해변으로
도망 오다가 추격군의 머리에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는다.
이 광경을 본 마을 청년 무돌은 추격군을 물리치고 해수기를 구하였지만, 다시 보낸 추격군의 포위에 100일 동안
저항하다 죽으면서 그 애틋한 마음으로 서로 입 맞추며 꼭 껴안은 채 바위로 굳어
연인의 영원한 사랑을 이루었다”는 전설바위이다.
청진리
월포만 남단 해안 돌출부위에 형성된 어촌으로서 3리인 보리진은 흥해읍의 오도리와 경계를 이루며,
마을 남서쪽에는 옛 봉화산인 묵은봉 [구봉산, 해발 104m]이 있다.
1914년 대곶이 (1리)와 흥해군의 푸나리 (2리), 보리진 (3리)을 합하여 청진이라 하였다.
널직한 바위로 이루어진 해안
이가리
옛날 둘 기생이 청진과 백암의 갈림길에 터를 잡고 늙도록 마을을 개척하면서 살았다 하여
지어진 지명이라 전하기도 하며 도씨와 김씨 두 가문이 길을 사이하여 각각 집성촌을 일구었는데
차츰 번성하면서 서로 합하여 한 마을이 되었다 하여 이가리라고 불렀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정월보름이면 김씨터주와 도씨골목 신위에 제사를 지내고 4년마다 용왕제 굿을 한다.
이가초등학교와 이가교회가 있다. 청진과의 경계지점 너래바위짬 언덕에 1983년 8월 등대를 설치하였다.
이정표는 도로를따라 가는데 그냥 해안길로 진행 이가리 해변으로
이가리 간이 해수욕장
봄 나들이 나온 차량과 가족들
긴 겨울 움추렸던 몸과 마음 따뜻한 봄바다에서 풀어 가시길
서정천을 가로지르는 용두교를 건너고
포항에서 영덕까지 철로가 완공되어 기차가 다닌다
월포 해수욕장으로 들어선다
백사장길이가 900m, 폭70m 총 107,786㎡의 백사장에 하루 50,0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물이 맑으며 ,
수심이 얕고 민박이 잘 형성되어 있다. 난류와 한류가 교차되는 곳으로 동물성 프랭크톤이 많아 꽁치
등 바다고기가 풍부하여 월포방파제에서의 낚시는 일품이다.
조용한 분위기와 깨끗한 물로 점차 관광객이 늘고 있으며, 주변에는 포스코휴양소와 청소년 적십자수련원이 있다.
또한 남쪽방향으로 해안선을 따라 2㎞내려가면 이가리 해안의 솔밭과 암석으로 자연발생유원지가 있어
해수욕과 삼림욕을 함께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둥근 달을 형상화한 월포 해변 저마다 흔적을 남기고
새의 부리 모양으로 만든 월포교
화진 해변으로 가는 길
방어리 마을 표지석이 있다
해파랑길을 걸으며 항상 느끼는 마을이름의 혼동이다
옛이름과 유래를 설명하고 현지지명을 안내하는것이 방문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본이 아닌가 한다
관광인프라의 기본이 아쉽다
방어리
*한가심이·황계(黃溪)·방어(方魚) : 큰 나루터가 있다 하여 한가심이, 개천이 누렇다 하여 황계(黃溪),
방어가 많이 잡힌다 하여 방어(方魚)라 불리었다.
9월 중순 강릉유씨(江陵劉氏)터주와 오천정씨, 월성최씨 골목 신위를 모시고 동제사를 지낸다.
해발 145m의 묵은봉(舊 烽山)기슭 해변에 위치한다.
언덕 위에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의 영일지역녹화사업순시기념비(1977년 건립)와
영일지역사방 준공기념비(1978건립)가 있다.
동해 수산연구소
하천으로 버리는 물이 많아 도로쪽으로 돌아 나간다
조사리 포구
조사리 해변
조사리
고려말 원각조사(圓覺祖師)가 태어난 마을이라 하여 조사리라 불린다
작은 몽돌으로이루어지 조사리 해변
방석리
1914년 방화동과 독석(獨石)마을을 합하여 방석이라 하였다.
*방화(芳花) : 도리산(桃李山)이 바위산인데다 옛날엔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가 많아서 꽃이 필때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마을 이름을 방화라 했다.
정월보름에 도리산에서 산신제를 지낸후 제당에서 동제사를 지낸다.
앞들에 600여 년생 느티나무 거목이 있는데(道나무 11-15-2), 동제사 때 금구(禁區)줄을 치고 이 나무 아래
샘물을 길어 제사용으로 쓴다.
이 나무와 삼화화성이라는 회사와의 결연비가 있다.
어래산 동편 산기슭에 1989년 9월 28일 건립된 한·미 해병충혼탑이 있다. 마을 뒤에 파평윤씨 재실이 있다.
*독석(獨石) : 마을 앞 바닷가에 검고 넓직한 큰 바위가 하나 외로이 있어 마을 이름을 검은돌, 딴돌,
독석이라 부른다. 한때 나포리라 부르기도 했으며, 백사장에 시장이 섰으므로 한불장터란 지며이 남아 있다.
마을 서편 어귀에 치성바위인 성혈식(性穴式)고인돌 '애기방우'가 있다.
정월보름에 동제사를 지낸다. 북동 해변에는 1966년 건립된 5인 해병 순직비가 있다.
방석포구
해변 풍경
해변을 벗어나 잠시 도로를 걷고 화진 해변으로
한적하고 울창한 솔숲을 지난다
화진 해수욕장
1914년 이진(耳津), 대진(大津), 화산(花山)과 같은 자연부락을 합하여 화진(華津)이라 하였다.
*이진(耳津) : 포구의 모습이 귀같다 하여 불리어진 지명이며, 일명 구진(龜津)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바닷가에 거북 모습의 큰 바위가 있어서 40여 년 전까지 여기에 동제사를 지내온데서 연유한 것이다.
정월보름에 동제를 지내며, 이 날 낮에는 여인들이 줄다리기를 한다.
*대진(大津) : 원래는 서피진(西皮津)이라 부르던 것을 대진이라 부르게 되었다 전한다.
1910년에 건립된 화진침례교회가 있고, 바닷가 제당에서 정월보름에 동제사를 지낸다.
임진왜란 이후 한동안 이곳을 골곡포(骨谷浦)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이는 이 마을 북쪽 백사장에서
왜병수송부대와 우리 수비병간에 대혈전을 벌여 그 죽은 자들의 무덤이 썩은숭이네 고랑에 가득하여,
백사(白沙)가 이동하면 유골들이 곳곳에 노출된 데서 불리어진 지명이다. 이 인근은 군해양휴양지로 쓰이고 있다.
*화산(花山) : 화산(華山), 고송라(古松羅), 학교마을 등으로 불리어지는데,
이는 이 마을 동편 모래언덕과 백사장에 해당화와 순비기가 많은데서 연유한다.
조선조 초기까지 마을 앞 언덕에 송라역이 있었으므로 일명 고송라(古松羅)라 부른다.
1958년 송라초등학교 화산분교가 설립되자 학교마을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 마을 앞 제당 주위의 전답과 뒷동산 음장고(陰欌庫)라 불리는,
난시에 음식물이나 문서를 저장하였다는 괴석이 있다. 주위논들은 1900년 초기에 이르기 전까지는
주로 염전을 일구었던 곳이다. 정월보름날이면 지경리(地境里)의 염전마을과 합동으로 동제사를 지낸다.
천마산 북쪽 산기슭에 신라대의 사찰이었던 반룡암지(盤龍庵址)가 있고, 마을 안에 1962년 건립된 화산기독교회가 있으며, 학교 앞에는 성혈이 있는 자연석이 곳곳에 있다.
화산불은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어 여름철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성두들 동남쪽 길가에 있던 현감(縣監) 박승현영세불망비(朴承顯永世不忘碑)가 옛 화산초등학교 교정에 옮겨져 있다.
1400시경 화진 휴게소 도착
긴 겨울 이겨내고 봄 향기 가득 마시며 걸었던 구간을 마친다
오도리~화진 휴게소 15k 4시간
'해파랑길 종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파랑길 17차 (0) | 2018.06.06 |
---|---|
해파랑길 16차 (0) | 2018.04.25 |
14차 환호공원~오도리해변 (0) | 2018.02.14 |
13차 흥환마을~영일대 환호공원 (0) | 2018.01.23 |
1구간 오륙도~미포 (0) | 2018.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