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아침 앙코르왓 유적군 관광시작
입구에서 관람표에 인증사진을 찍고 입장
프놈바겐 사원입구 사원을 건축한 자재는 사암과 호수 바닥의 흙으로 빚은 벽돌
보수공사중이다
프놈바겐사원은 캄보디아 국경지대의 산맥외 평야지대에 위치한
몇개의 낮은산 (높이 약 60m) 중 하나로 산위에 세워진 초기의 사원이다
톤레삽호수 방향
북쪽 멀리 산악지역
캄보디아 옛 크메르제국 민족의 기는 다산이란다
크메르제국의 수많은 핍박을 받았던 태국이 복수의
정벌하였을때 기를 꺽기위해 자기나라처럼 사원에 세워진 석상들의 머리를
잘랐지만 나중에 머리가 아니라 아래사진처럼 다산을 위한 상징물인것을 알고 이를 모조리 파괴하였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로 크메르는 힘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는 소국으로 전락하였다한다
인도 흰두문화를 전래 받았던 초기 크메르 사원 문양들
내부는 이렇게 벽돌로 쌓고 외부는 사암으로 쌓아올렸다
불가사의한것은 산악지역에도 사암이 없고 황토평야가 전부인 땅에서 수많은 사원들의 석재를
어디서 어떻게 옮겨왔는가 하는것이다
자료을 찾아보니 최근 일본 사학자가 외곽 광산에서 운하를 파서 운반하였다고 하였는데
미스테리는 확실하지 않다
두번째 앙코르돔 남문 크레앙 사원
자야바르만 7세때 건축한 불교문화를 도입한 사원
자야바르만 7세는 불교를 국교로 만들고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단다
캄보디아의 역사를 살펴보면
나라 이름 캄보디아는 크메르 제국의 다른 이름인 깜부자(Kambuja)로부터 유래된
프랑스어 국명인 "캉보즈"(Cambodge)가 영어화된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1970년 이전 왕국시대에는 캄보디아로 불려오다가, 1970년 론 놀의 쿠데타로 공화국이
성립되자 국명이 크메르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1975년 4월 크메르 루즈(Khmer Rouge)에 의해 수도 프놈펜이 함락되고 국명은 또다시 민주 캄푸치아로 바뀌었다.
4년 뒤인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헹 삼린가 캄푸치아 인민 공화국으로 바꾸었다가,
이후인 1993년에 현재의 국명으로 되돌아왔다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캄보디아에는 기원전 2000년~1000년대 사이에
신석기 수준의 문명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다.
[1] 이들은 주로 중국 동남부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추측된다.
기원후 1세기경에는 메콩 강 하류와 하구에서 농경과 어로, 목축을 통해 생활하며
조직화된 사회를 구성한 집단이 나타났으며,
이들은 인도와의 교류를 통해 종교 등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인도차이나 반도에
알려진 첫 번째 국가인 푸난을 세웠다.
푸난은 1세기 에서 6세기 말 경까지 번영했으며, 이후에는 메콩 강 중류에서 일어난
진랍의 공격을 받아 위축되다가 7세기 중엽 멸망하였다.
이 시기의 진랍은 지방분권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랍의 왕인 자야바르만 1세가 681년 사망한 후,
진랍은 육진랍과 수진랍의 두 개의 나라로 분리되었으며, 이후 말레이인과 자바인의
압박을 받아 현재의 캄보디아 지역의 국가들은 점차 속국화하였다.
이후 9세기에 자야바르만 2세가 등장하여, 자바인들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하고
주변 소국들을 정복하였으며, 종래에는 앙코르를 수도로 하는 왕조를 세웠다.
이것이 크메르 제국의 시작이다.
크메르 제국은 9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번영하였으며,
앙코르 와트와 같은 유적들도 이 시기의 군주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그러나 13세기 초 자야바르만 7세의 치세가 끝난 후 점차 약화되어
14세기에는 서쪽의 아유타야와 남쪽의 퉁구 왕조 (현재의 미얀마),
그리고 동쪽의 베트남 사이에서 약소국으로 연명했다.[2]
1431년에는 아유타야의 침공으로 수도 앙코르를 함락당하고 현재의 프놈펜으로 천도하기도 했으며[3],
18세기 말에는 베트남에서 일어난 떠이선의 난과 미얀마인의 아유타야 침공의
여파로 국토가 황폐화되기도 하였다.[3]
1863년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으며 이후 계속해서 식민지로 남아있다가
1954년 프랑스 공동체 내의 자치국으로 독립했지만,
베트남 전쟁 등의 영향으로 인해 크메르 루즈가 득세하는 등 계속해서 정권이 불안정했다.
크메르 루주 등의 준동과 베트남의 개입으로 인해 내전이 1980년대 말까지 계속되었으며,
이 시기 중 킬링필드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편집] 킬링필드
킬링필드는 1975년에서 1979년 사이, 민주 캄푸차시기에 캄보디아의
군벌 폴 포트(본명 살로트 사르)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Khmer Rouge: 붉은 크메르)라는
무장 공산주의 단체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을 말한다.
원리주의적 공산주의 단체인 크메르 루즈는 3년 7개월간 전체 인구 700만 명 중 1/3에 해당하는
200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을 강제노역을 하게 하거나 학살하였다.
1989년 이후 베트남군이 철군하였고, 1991년에는 파리 평화협정이 체결됨으로써 내전이 공식적으로 종결되고
유엔의 임시 관리하에 놓이게 되었다.
1993년에는 망명해 있던 국왕 노로돔 시아누크를 다시 불러오고 보통 선거를 통해
정체를 입헌군주제로, 국명을 캄보디아왕국으로 바꾸었다.
이후 총리 훈 센에 의한 쿠데타가 한 차례 있었지만, 1993년 이후로 정치는 대체로 안정되어 왔다.
다음은 왕궁터
왕이 병사를 사열하였던 광장 길은 바로 태국으로 연결되어 이웃나라 정벌의
길로 사용하였으며 이길로 출정한 전쟁은 모두 승리하였다는 승전로이란다
코끼리들이 사열하던 코기리테라스
왕이 기거하며 기도하고 잠자던 궁
기름나무 이수액에 불을 붙혀 사용한다
캄보디아는 지금 건기가 겨울 나무들이 낙엽을 떨군다
시가 1억원을 호가한다는 이행나무
유럽성당의 바닥과 단상등으로 쓰이는 최고급나무라고
이나라 산악밀림지대에 무궁무진있다는데....수없이 갈린 지뢰때문에.
옆의 나무도 다른종이지만 버금가는 시가 5천만원
이동수단 툭툭이를 타
바프욘사원
엄청나게 큰 나무들에 의해 점점 무너져 가는 사원
열대 비단나무 뽕나무를 매체로 성장하는 괴물같은 나무
자야바르만 7세 가장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고 국민들의 추앙을 받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살아생전 하지 못한 효를 하고자 지은 사원이라는데
이곳은 보석으로 치장한 기도처돌구멍마다 보석으로 채웠다한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툭툭이타고 30여분 이동 한국식당에서 야채쌈밥으로 점심 후
캄보디아 하이라이트 앙코르왓 관람
앙코르왓
앙코르왓은 크메르의 고대도시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중의 하나이다.
시엠립시 북쪽 6.5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이 사원은 1860년 식물학자 앙리무오가 발견한 이래
이곳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있다
이 사원은 12세기 전반에 수리아바르만 2세가 건립하였으며 힌두교의 비슈누 신과 일체화한
자신의 묘로 사용하기 위해 이 사원을 건립하였다.
앙코르왓은 힌두교의 신들과 그 대리인인 왕에게 바쳐진 장대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곳에 있는 모든 건축물 하나하나에는 크메르인들의 독자적인 문화와 그들의 우주관 및
신앙관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그들이 건설한 세련되고 정교한 호수,
운하와 레삽으로부터 연결시킨 관개수로를 이용하여 부유하고 막강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앙코르왓의 구조는 동서로 약 1,500미터, 남북으로 약 1,300미터의 넓이에 중앙에 있는 탑을
기준으로 석조의 대사원이 건설되어졌다.
사원 주변의 운하는 바다를 의미하며 높이 65미터의 중앙탑은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을 나타낸다.
또한 사원의 회랑은 히말라야 산맥을 의미한다.
그리고, 주변에는 넓은 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그 외부는 너비가 약 200미터인 수로로 둘러싸여 있다.
캄보디아의 팝나무는 단맛을 내는 슈가팝이다
불가사의한 앙코르 유적지를 둘러보고
세내로 돌아와 마사지의 원조 크메르 전심마시지 후
부페식을 먹으며 압사라민속춤 구경
화려한 압사라춤으로 유명한 태국 역시 크메르의 문물을 받아들여
발전시켰다한다.
캄보디아의 민속춤 무희들이 크메르 루즈에의해 3000명정도가 학살되어
명맥이 거의 끊어진 상태지만 옛명성을 살리기위해 노력중이란다
야시장방문 서민들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 가족과 친구들과 식사와 놀이를 하는 곳
캄보디아 마지막날 우리가 묵었던 퍼시픽호텔을 떠나며
가이드가 특별히 데려간 곳 현지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한곳
이곳을 방문할때 전날 야시장에서 마련한 과자를 나누어준 답으로
소녀가 야자나무에 올라가서 야자를 따온다
더울때 먹으면 맛나는 야자수액 한모금
이런 수로들이 마을마다 지나는데 누런색갈을 띠고 더러워 보이지만
황토가 섞여 전혀 썩지않으며 풍부한 고기들이 살고있어 먹거리를 제공한다
점심으로 먹은 전통음식 수끼 고기와 어묵 야채들을 함께 익혀서 소스에 먹고
남은 국물로 밥을 뽁아서 먹는다
톤레샵호수 세계 3위 아시아 1위의 호수로
크메르인들의 일상생활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호수다.
크리스탈처럼 맑거나 옥빛을 띤 호수를 기대했다면 미리 실망하는 것이 좋다.
메콩강은 황토흙을 실어나르기 때문에 탁한 황토색을 띤다.
해질녁에 물빛이 황금색으로 물들 때 가장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한다.
톤레삽 호수는 캄보디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지리적인 경이물 중의 하나로,
길이가 160km이고 너비가 36km에 이른다. 건기에는 3,000km2의 면적에 수심 1m 정도를,
우기에는 10,000km2 면적에 12 m 수심이 된다.
톤레삽 호수에는 풍부한 민물어류가 있고, 이러한 자원은 물새나 수생동물, 양서류가 살기에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우기가 시작되는 6월 이전까지는 습지에서 고기를 잡는 많은 물새들을 볼 수 있다.
이곳에는 잉어나 메기, 담치, 청어, 민물농어, 구라미 등의 어류가 서식을 하며, 담수량도 동남아 최대라고 한다.
수 세기동안 이 호수주변의 사람들은 1km2당 10톤의 어류를 잡을 수가 있었고, 크메르의 주요 자원으로 공급되었다.
또한 이 호수는 수도인 프놈펜과의 주요 수로로 이용되었으며, 호수 주변의 다섯 지방과도 통한다.
요즘에는 관광산업이 많이 활성화되어 프놈펜과 씨엠립 사이에 보트로 여행하는 코스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배를 타고 호수로
엄청나게 큰 부레옥잠
배에서 조수일을 하며 관광객들에게 안마스비스로 팊을 받는 소년가장
카메라를 주었더니 우리들의을 열심히 찍고 옆친구는 신기한듯 보고있다
옛날 대제국을 건설하여 동남아를 지배하였던 나라
국토의 70퍼센트가 황토평원인 나라
1년 4모작으로 어렵게 살지만 굶지는 않는나라
오랜전쟁과 내란으로 국민 거의다 문맹이며 나이가 20대 이하인 나라
풍부한 자원이 있지만 개발에 어려움이 많은나라
동병상련을 겪은 우리나라를 최고로 좋은나라로 여기는 나라
행복지수 세계 최상위에 있는 나라
캄보디아 여행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한 여행이었다.
1일 밤 베트남 호치민을 거쳐 야간 비행으로 부산도착 4박 6일간의 여행을 마친다
'여행과 풍경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대간 협곡열차여행 (0) | 2013.09.30 |
---|---|
일본 아소산 유휴인 (0) | 2013.05.26 |
베트남 하노이,하롱베이 (0) | 2012.12.04 |
대마도 1박 2일(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의 풍물과 역사를 맛보다) (0) | 2012.09.03 |
정선,영월 여행 (0) | 2012.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