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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종주기

해파랑길 8차 감은사~감포항


해파랑길 8차 구간은

기본 구간은 나아해변에서 감포항까지이나 원자력 발전소때문에 해안길은

없고 지난구간 봉길해변에서 잠시 문무왕릉을 둘러본지라 감은사지를 본 뒤 

감포항 송대말까지 약 10 k의 길이다


09시경 감은사지 도착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역사가  깃든  감은사지를 둘러본다












이견대까지 잠시 버스 이동후 본격적인 해파랑길을 이어간다



이견대에서 보이는 문무왕 수중왕릉






해안길 입구에 세워진 동해구와 문무대왕 유언비

글씨가 지워져 희미하다

공들여 만들었으면 관리가 필요한데 누가 주체이든 관리행정의 난맥


대본리 바다로 이어지는 하천은 동해로 이르는 하천이어서 동해천으로

불리었지만, 대종이 지나간 하천이라 하여 대종천으로 불리고 있다. 
대종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 언덕에는 지금도 ‘신라동해구(新羅東海口)’라

새겨진 비석이 서있다.
동해에서 신라로 통하는 입구라는 뜻이다. 
내륙이 동해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곳으로 왜구들이 노략질을 위한 길을 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동해구에서 바다로 난 좁은 길로 들어서면 갯바위를 때리는 파도소리가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마을은 완만하게 홈이 패인듯한 형상으로 반달모양으로

형성돼 횟집들이 늘어서 있다.
바다는 들쑥날쑥한 바위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생겨 수시로 파도가 크게 일어나

절경을 이룬다
마을을 좀 더 깊숙하게 들어서면 바다로 쑥 나온 곳에 섬인양 바위가

둥그스름하게 솟아 있고 그 위에 앙팡지게 나이 제법 듬직한 소나무 한

그루가 앉아 있다. 마치 촛대 같은 모양이라 하여 ‘촛대바위’로 부른다. 

촛대바위에는 전설이 있다. 

대본리에 산신과 해신, 그리고 지신이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
당시에는 다산(多産)이 가장 큰 축복이었다. 
그래서 산신과 해신은 산과 바다에서 더 많은 다산을 위해 삼신할매가 한 달에

한 번씩 촛대바위에서 기도하는 날을 기해 서로 모셔가려고 삼신할매가 앉아

기도하는 바위에 각자 금실과 은실을 매어 서로 잡아 당겼다. 
삼신할매가 기도에서 깨어나 보니 바위가 바다쪽으로 제법 많이 옮겨져 있고

금실과 은실이  매어져 있는 것을 보고 산신과 해신이 다투었음을 짐작했다. 
삼신할매는 산과 바다의 생물들에게는 지혜를 주지 않겠다고 벌칙을 내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소나무로 변해 꼼짝하지 않았다. 
여명에 해가 떠오르는 시간 소나무 위에 태양이 걸리면 촛불이 밝혀진

모습이어서 그때부터 촛대바위로 불렀다. 
이 시간에 원하는 것을 마음에 담아 간절히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마을사람들의 기도처가 되고 있다. 



대본포구

해안의 소나무가 멋지다

촛대바위


잠시 도로를 걷고



대본리해변 여름 막바지 해변은 한적하다

가곡포구

'가곡항'은 경북 경주시 감포읍 대본1리에 있는 조그만 어항이다.

1972년 2월7일 지방어항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본래는 장기군

내남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대본, 가곡을 병합하여

'대본리'하였다. 주요 해산물은 고등어, 우럭,

조피볼락, 감성돔, 돌돔, 오징어, 돌미역, 참가자미 등이 있다.




마을의 풍요와 어민들의 안녕을 비는 가곡제당

해파랑길내내 작은 포구에 있는 제당들

민초들의 힘든삶을 유추해  볼 수있다





차르르 차르르 몽돌해변



갯완두

바닷가 해안가에 나비처럼 피는   갯완두는 완두와 비슷하다.

꽃이 특히 닮아서 나비처럼 아름다운데, 그런 종류들을 흔히 접형화관이라고 한다.

푸른 바다와 모래사장을 배경으로 자주색 꽃이 군락을 이룬 모습은 아주 아름답다.


솔밭길도 잠시





멀리 감포항이 보이고


나정항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 나정2리에 있는 어항이다.

1972년 2월 7일 지방어항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본래 장기군 내남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하여

고라리와 상정리를 병합하여 나정리로 복원하였다.


정자에서 웰빙 점심


방파제와 해안을 보호하기위한 삼발이



나정고운모래해변

물이 맑고 수심이 얕으며 온천 해수탕이 있어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모터보트, 바나나 보트 등의 수상 레저가 가능하며 부대시설과 숙박시설,

주차장이 잘 갖추어져 있다.

백사장 뒤쪽에 100m에 이르는 소나무 숲이 조성되었다.

나정해수욕장은 그 이름조차 고운모래해변이라고 바꿔 부를 정도로 아름다운

해변이다.

이 곳에 1969년 이른 봄 어느날 향토작가 정귀문 씨가 찾았다.

시리도록 푸른 나정리

앞 바다에서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에 마음을 실어 나르다 만든 노래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조미미가 구성진 목소리로 불러 큰 인기를 얻었든 "바다가 육지라면"이다


두번째 만나는 이정표

경주구간의 해파랑길 안내판은 전반적으로 부실하다

중요한 길목이나 갈림길의 표시는 초행자에게는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전촌항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 전촌리에 있는 어항이다.

1972년 2월 7일 지방어항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 35.7914987; 129.4949522 (전촌항)

감포항 남쪽 2km의 돌출부 서쪽 만입한 곳에 있는 규모가 대체로 큰 어항이며

물양장을 공원화하여 아름다운 조경을 이루고 야외공연장도 갖추었다.

지리적으로 감포항과 가까이 있어서 어업활동과 생활권을 같이하고 있으며

어업인구 400여명, 어선 60여척이 조업하고 있다.





전촌항에서 감포항으로 넘어가는 산길

해안초소 아래 용굴

용굴의 전설...용굴에는 담룡(淡龍)과 사룡(巳龍)이 오랫동안 살았다 


서삼란 해설사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감포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한

‘감포읍지’에 의하면 ‘장진리(부락명으로 전촌리의 옛 이름)’에는 갈대밭이 많았다고 한다.

맑은 물에 사는 담룡(淡龍)과 뱀이 변해서 용이 되었다는 사룡(巳龍)이 오래 같이 살았다는 옛부터의 전설이 있다. 용굴은 용이 살던 구멍으로 이 두 용들은 사는 곳이 달라서 오랜 세월 싸움을 했다.

그래서 ‘장진’이라는 지명의 어원이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용굴 주변, 임진왜란 당시 ‘강씨 처녀’ 이야기
이곳 용굴 주변에는 또 한 가지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용굴로 가기전 대나무가 우거져 지금은 그 흔적을 잘 알 수 없는 커다란 굴이 하나 있다. 이 굴은 지상에서

8~9미터 되는 절벽에 있어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 굴은 매우 길어서 임진왜란 당시 왜구들이 쳐들어 왔을때 마을 주민들이 굴속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의 강씨 처녀가 물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왔다가

왜구들에에게 발각되었지만 끝까지 마을 주민들의 은신처를 함구해 왜구들에게

죽는다.
이후 주민들은 강씨처녀의 뜻을 기려 마을의 밭에 비석을 세웠고 20~39년전

까지만 해도 그 비석을 볼 수 있었으나 언젠가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지금도 절벽위에 있는 ‘죽공암’의 흔적을 볼 수 있다고 하며 족히 어른 10여명은

들어갈만한 공간이 있다고 하니 놀라울 수 밖에




용굴과 전촌항


감포항




매립지






낡은 해파랑 표시기

찾아서 걷는 모든이에게 도움이 될수 있도록 해파랑길 주체는 자각하여

아름다운 도보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더 이야기가 있고

걷고 싶은 길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해파랑길 길동무 나의 베낭


13시 30분 쉬엄쉬엄 4시간여 감포항 주차장에 도착


송대말 등대탐방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 앞바다를 밝혀주는 송대말 등대는 1955 년 무인등대로

건립되어 1964 년 유인등대로 승격시켜 운영하고 있다.

2001 년도에 경주시 감포읍의 상징인 감은사지 석탑모형을 본따 새롭게 만든

등탑은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하얀 등탑과 푸른 소나무숲이 잘 어우러지는 이곳 , 등탑 전망대에서 동해의

푸른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신라시대부터 경주의 동쪽 바다를 이용하여 일본과 교역을 하였다는

기록은 있으나 선박이 안전하게 접안하여 해상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은 당시의

해역 여건으로 볼 때 감포 ( 甘浦 ) 일 것이다 .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감포는 경주에서 33Km 떨어져 있으며 ,

송대말은 ( 松臺末 ) 감포항의 북쪽의 위치하는 곶으로 육지 끝에서

약 1000m 까지 암초들이 길게 뻗어 있어 작은 선박들의 사고가 빈번하였다 .

 또한 먼바다에서 조업후 감포로 입항하는 선박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지형이

송대말이다 . 수령 300 년∼ 400 년 정도 소나무가 무성하여 지역에서

유일한 공원이며 , 일제시대부터 축양시설을 하여 바다에서 고기를 길렀으며 ,

1919 년 어항으로 개항되었다.

항의 위치와 부근에 산재하는 험초 및 장해물을 표시하기 위하여 1933 년 2 월

감포어업 조합에서 등간을 설치하여 운영하였으며 , 동해안 운항선박이

늘어나면서 항의 북쪽에 육지 끝 송대말에 1955 년 6 월 30 일 무인등대를

설치하였으며 , 육지초인표지 역할의 필요성이 있어 기존의 등탑에 대형 등명기를 설치하여 광력을 증강하고 무신호기를 설치하여 유인등대화 하였다.













골굴사 탐방
















선무도 시범






경주에서 여름 단합행사를 겸한  저녁


막바지 여름 잘 보내시고

9월에 만납시다